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 가쓰시카 호쿠사이 (우키요에)

발톱을 날카롭게 세운 듯한 거대한 파도가 후지산과 어부들을 집어삼킬 것만 같은 찰나의 순간을 그린 이 작품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거대한  파도 아래>입니다. 이 작품은 우키요에(浮世絵)라는 일본 전통 목판화 기법으로 제작된 것으로, 후지산과 그 주변 풍경을 그린 <후가쿠 36경(冨嶽三十六景)>이라는 연작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은 이 작품이 가지는 의미와 서양미술에 영향을 끼쳤던 여러 요인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9세기 유럽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자포니즘'이라 불리던 유행은 19세기 후반 현대미술의 시작으로 평가받는 인상주의의 출현에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 아래 25x37cm - 가쓰시카 호쿠사이 목판화

 
 

우키요에 (浮世絵)

우키요에는 '부유하는 세상의 그림'이라는 뜻으로, 17세기부터 20세기 크게 유행했던 일본 전통 목판화 기법입니다. 주로 춘화, 미인도와 같은 세속적인 내용이나 후지산과 같은 관광 명소의 풍경을 주제로 한 대중적인 작품들을 대량 생산이 가능하였기 때문에 조닌이라고 불리던 상인계급을 비롯한 서민층으로부터 인기를 얻었습니다. 
 

본래 우키요에는 전국시대 끊임없는 전쟁으로 피폐한 상황에서 '세상 참 힘들고 추잡하다'를 뜻하는 단어였지만 에도시대로 접어들면서 일본이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상공업이 발달하게 되면서 '대중들의 쾌락적 삶의 방식'이란 의미로 전환됩니다.

 
 
 

탕기 아저씨의 초상-반 고흐 1887

 

자포니즘 (Japonism)

자포니즘이란 19세기 중반 서양 문화 전반에 영향을 주었던 일본 미술의 유행을 말합니다. 1854년 미국의 매슈페리 제독에 의해 일본이 강제 개항되면서 교역이 이뤄지면서 일본의 도자기, 의류, 우키요에들이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되는데요. 당시 유럽의 인상주의 화가들은 여태까지 자신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화풍을 가진 우키요에를 보고 큰 영감을 얻게 됩니다.  
 
사실적인 묘사가 생명이었던 당시 시대 상황에서 우키요에는 본인 상상력에 의지해 마음 가는 대로 그린 그림, 추상적인 색채감, 원근감이 배제된 평면적 구성 등을 보여주면서 사진의 발명으로 '현실의 재현'이라는 역할을 뺏기고 고민 많던 젊은 화가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큰 사건이었습니다. 
 

모네의 기모노를 입은 아내1876  일본식 다리와 모네 사진 1917

 
우리가 잘 아는 에두아르 마네, 에드가 드가, 반 고흐, 클로드 모네 등 많은 인상파 화가들이 우키요에를 소장하고 모방하게 되는데 특히 반 고흐는 40 여장의 일본 판화를 소장했었다고 알려지고 있고 심지어는 그대로 따라 그린 작품도 있습니다. 그리고 모네는 자신의 그 유명한 정원에 일본식 다리를 설치합니다. 
 
 

드뷔시의 교향곡 < 바다 >

드뷔시의 교향곡 <바다>는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작품에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왼쪽은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가메이도의 매화정원입니다. 고흐는 오른쪽 그림 꽃피는 매화나무처럼 모사하고 연구했습니다.

 

... 어쨌든 내 모든 작품은 일본 미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일본 미술은 일본 자국에서는 퇴폐해졌어도 프랑스 인상주의 작가들 사이에서 다시 그 뿌리를 박고 있구나. 내가 가진 관심은 일본 물건의 거래 가치보다 예술가를 위한 그 실질적인 가치에 있단다.....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가쓰시카 호쿠사이 (葛飾北斎)

가쓰시카 호쿠사이(1760~1849년)는 에도시대의  대표적인 우키요에 화가입니다. 6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16살 때는 목판화 장인의 조수로 입문하고 후에는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사츠카와 순쇼의 제자로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미술 경력이 시작되는데요.  그는 89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약 3만 점 이상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는 현재 인류의 예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거장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83세 자신이 직접 본인을 요염하게 그린 초상화-가쓰시카 호쿠사이 1760

 

일평생 정체되는 것을 싫어하고 새로운 시도를 좋아했던 성격 탓에 스승에게서 배운 대로 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문(이 일은 평생 자신을 채찍질하는 동기가 됩니다)당하기도 하지만  제 버릇은 남 못 줍니다. 

호쿠사이는 자신의 생애동안  총 93번의 이사를 다녔는데 어느 날은 하루에 3번도 이사를 했답니다. 이유는 그림에만 몰두하기 위해 방이 지저분해지면 청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사를 택했다고 합니다. 그는 평소 죽을 때까지 100번의 이사가 목표다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전해지는데요. 93번째 이사는 예전에 자신이 살던 집을 다시 가게 되었는데 그 집이 자신이 떠났을 때와 똑같이 어지럽혀져 있는 것을 보고 이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고 전해집니다.

게다가 자신의 예명(호)을 일생동안 30번 이상을 바꾸는데 가장 유명한 예명이 우리가 부르는 '호쿠사이'입니다.

호쿠사이는 '북쪽의 작업실'이라는 뜻으로, 그가 살던 곳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호쿠사이는 성격대로 인물화, 동물화, 식물화, 춘화, 풍속화 등의 다양한 장르를 추구했고 독학으로 네덜란드, 프랑스, 중국의 그림들을 연구하여  융합하여 자신의 스타일을 쉬지 않고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그는 자신의 우키요에에 입체감과 생동감을 주기 위해 서양의 원근법과 색채를 도입했고 서양에서 들어온 새로운 안료 '프러시안 블루'를 사용하여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를 완성합니다. 
 

하늘이 저에게 10년만 더 살게 해 주시면... 5년만이라도 더 주시면 진짜 화가가 될 수 있습니다...

-호쿠사이가 죽기 전에 남긴 말-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는 호쿠사이가 "미술에 미친 노인"으로 예명을 바꾸고 활동하던 시기인 1831년 제작한 우키요에 '후가쿠 36경' 연작 중 첫 번째 작품입니다. 일본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품이자 인류 예술사를 통틀어서 가장 많이 패러디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대자연은 인간의 절망 앞에서 무심하다"는 주제로 평가받는 이 작품은 다음과 같은 조형적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파도: 전체 구도의 중심이며 나선 형태로 묘사된 파도의 발톱은 배경인 후지산으로 관람자의 시선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파도의 발톱은 파도가 마치 유령이나 괴물과 같이 어부들을 위협하는 이미지를 갖게 합니다. 그리고 파도의 아래 부분은 후지산과 유사한 형태로 묘사하여 연속성과 리듬을 추가해 내러티브를 강화합니다. 
 

오시오쿠리 배가 보통 12~15미터였습니다. 고로 파도의 높이는 10미터에서 12미터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 배: 파도가 삼키키 직전의 조그만 배 세 척이 전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배들은 살아있는 생선을 신속하게 운반하던 오이오쿠리(押送船)라는 쾌속선입니다.  대부분의 관람자들은 위와 같은 상황이 위태롭다는 느낌으로 바라보게 되지만 일본인들에게는 피 끓는 자긍심을 주는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태풍이 와도 배달은 간다.' 그리고 배에 탄 사람들의 직선 형태의 경직된 모습은 역동적인 포물선을 그리는 파도와 대비됩니다. 
 
 

후지산과 주변의 이치몬지 보카시 기법 효과

 
- 후지산: 중앙 뒷배경으로 눈 덮인 후지산을 배치하였습니다. 예로부터 신성시되어 오던 산이며 위험 천만한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분위기를 가짐으로써 "대자연은 인간의 절망 앞에서 무심하다"는 주제를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후지산 주변에는 후키보카시( 拭きぼかし) 기법을 사용하여 암울한 분위기를 더합니다.
 

파도의 디테일을 표현한 이타보카시(板ぼかし )기법

 

작가는 이 작품에서 아래에 설명된  두 가지 후키보카시(拭きぼかし) 목판 기법을 사용합니다.

후지산 주변의 색조변화를 표현하는 데 사용한 '이치몬지 보카시(一文字ぼかし)'라는 목판 기법은 판화를 인쇄하기 전 목판에 채색된 물감을 '조킨'이라는 천으로 적셔서 번지도록 하여 그러데이션 효과를 주는 기법입니다. 

 파도의 세부 영역 가장자리를 표현하는 데 사용한 '이타보카시(板ぼかし)'기법은 채색에 필요한 영역보다 조금 더 큰 영역을 잘라내고 그 가장자리를 연마하여 색상의 전환을 덜 선명하게 만드는 기법입니다. 이 기법은 주로 구름이나 어두운 영역을 표현하는 데 사용합니다. 이 작품에서는 파도 가장자리의 주름진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제목과 작가의 서명

 
 
- 제목과 서명: 네모칸 안에 후가쿠 36경(冨嶽三十六景)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神奈川沖/浪裏)라 적혀있고 왼쪽 아래로 '호쿠사이가 이치사이로 변경되었습니다(北斎改爲一筆)'라고 적혀있습니다. 이는 예명을 바꿈과 동시에 자신이 '한 획으로 그리다'라는 의미로 작가 본인의 자신감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