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뇽의 처녀들-파블로 피카소

20세기 현대 미술에서 피카소만큼 일반 대중의 상상력을 뛰어넘은 예술가는 없었습니다. 그런 그에게도 인생을 건 모험과도 같은 작품이었던  <아비뇽의 처녀들>은 뒤틀린 얼굴을 한 여성들의 신체를 노골적으로 드러냄과 동시에 전에 없던 혁신적인 미술 기법을 보여주며 입체파(cubism)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작품소개

1907년 피카소가 남긴 " 아비뇽의 처녀들 "은 현대 미술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피카소는 이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아프리카 부족의 가면과 이베리아 반도의 석기시대 조각상 그리고 폴 세잔, 앙리 마티스 등의 영향을 받았지만 무엇보다도 입체파의 탄생을 알린 것으로 더욱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입니다.

 

 

피카소는 머리가 돌아서 그 그림 뒤에서 목을 매달 것이다

 

아비뇽의 처녀들-파블로 피카소 1907&copy;wikipedia

 

 

이 그림은 매춘 업소에 있는 다섯 명의 여성들을  기하학적 형태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두 인물의 얼굴은 아프리카 부족의 가면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나머지 왼쪽에 배치한 세 인물은 이베리아(포르투갈, 스페인)의 조각상이 보여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비뇽의 처녀들>은 과거와 미래를 가르는 틈이다. 문화적으로 20세기는 1907년에 시작되었다.
조너선 존스<가디언>

 

원래 제목은  <르 보르덴 다비뇽(아비뇽의 매춘가)>이었지만 그의 친구 앙드레 살몽(Andre Salmon)은 당시 기획했던 전시회(Salon d'Antin)에 막상 이 작품을 걸려고 생각해 보니 표현도 논란거리인데 제목도 과격하다 판단하여  <레 드무아젤 다비뇽(아비뇽의 처녀들)> 로  제목을 바꾸어서 전시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대해 피카소는 자신의 친구 살몽에게 크게 화를 냈다는데 그 제목은 일반 대중들의 위선적인 도덕심에 굴복한 결과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훗날 작품 제목을 바르셀로나의 카레 다 비뇨에 있는 사창가를 생각하고 지었는가?라는 물음에 피카소는 다음과 같이 말을 남깁니다. 

내가 특정 도시의 특정 거리에서... 그러니까 문자 그대로의 실제 상황에 영감을 찾을 만큼 감정적인 사람으로 보입니까? 
더욱 화가 나는 것은 내가 아니라고 대답을 해도, 사람들은 계속 작품 속의 아가씨들이 카레 다 비뇨의 사창가에 있는 여인들이라고 주장한다는 겁니다.

 

현대 미술의 시작

19세기 후반 유럽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예술계에 큰 변화가 일고 있었습니다.  현재 프랑스 오르셰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는 수많은 작품들이 그때의 흔적들입니다. 전통적인 아카데미, 즉 고전주의 예술에 반기를 든 젊고 유망한 예술가들, 바로 인상주의 화가들이 출현한 시기였습니다. 사실 그대로의 재현을 사진에 뺏긴 화가들은 점차 자기만의 주관을 가미해서 작품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 새로운 미술의 트렌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 전통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주제
• 실제 사물로부터 색채의 자유
• 빛과 색 그 자체를 담는 시도
• 원근법으로부터의 해방으로 새로운 회화적 공간의 발견
• 선과 면의 회화적 공간을 새롭게 발견하기 위해 대상을 단순화함

이러한 개성을 지녔던 클로드 모네, 조르주 쇠라, 에두아르 마네 등 지금도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예술가들은 회화에 있어서 본다는 것에 대한 정의와 그림으로 담아낸다의 정의를 새롭게 확립시켰습니다. 

 

또한 '원시적이다'라면 야만적이고 미개하다는 일반 대중의 인식과는 달리 오히려 역사를 원초적인 상태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인간적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보았던 원시주의(primitivism)의 등장과 함께 폴 고갱과 같은 거장이 등장합니다. 

 

이후 피카소와 그의 친구 브라크와 함께 입체주의 미술을 세상에 알렸으며 뒤를 이어 칸딘스키, 몬드리안과 같이 추상주의 미술도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파블로 피카소가 남긴 <아비뇽의 처녀들>은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 수많은 예술가들의 노력을 집약하여 새로운 미술, 현대 미술의 가능성을 새롭게 열어둔 작품입니다. 

 

입체주의의 시작

1904년 가을, 피카소는 페르난드 올리비에라는 여인과 만나 그 후 7년간 연인관계로 지냅니다. 황갈색의 머리에 게으른 성격을 가졌다고 전해지는 그녀는 화가의 모델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는데 그 점이 피카소의 질투심을 자극했다 전해집니다. 피카소는 스페인의 피레네에 있는 외딴 마을에서 그녀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올리비에라와의 시간을 기념하는 <하렘>이라는 작품을 남깁니다. 이 작품에서 남성의 야릇함을 상징하는 요소는 <아비뇽의 처녀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렘-파블로 피카소

 

1906년 봄, 살롱 데 앙데팡당에서 자신의 예술적 라이벌이라고 평가받는 앙리 마티스의 <삶의 기쁨>을 보게 됩니다. 이 작품은 당시 엄청한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며, 이에 크게 자극받은 피카소는 누드화에 대한 집착이 시작됩니다.

 

뿐만 아니라 폴 고갱, 폴 세잔 등이 남긴 작품들도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폴 고갱의 원시주의적인 스타일과 세잔의 구조적인 접근법은 청년 피카소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그들을 능가하는 작품에 대한 의지를 다지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나가기 시작합니다.

 

피카소에게 영향을 준 작품들

 

 

청년 피카소는 세탁선(Bateou Lavior)이라고 불리던 그의 집이자 작업실에 틀어박혀서 새로운 회화 기법에 대한 연구에 매진하는데 이를 본 룸메이트이자 미술평론가였던 피카소의 친구 앙드레 살몽은 다음과 같이 당시의 상황을 전합니다.

 

피카소는 캔버스를 벽에 돌려놓고 붓을 내던진 채, 몇 날 며칠을 밤낮없이 드로잉만 했다.... 비록 이전과 같은 열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는 매우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피카소는 자기 실험의 결실이 될 작품을 작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던 피카소는 파리 트로카데로 인류사 박물관에 전시된 아프리카 마스크들을 보고 자신의 예술 인생에서 큰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처음 트로카데로 박물관에 처음 가 봤던 때였어. 그곳은 아주 역겨웠어. 냄새가 고약했어. 당장 나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지. 그때 본거야. 수십 개가 있더군. 보자마자 알았지. 마티스의 조각과는 달랐어. 예술이 아니었지. 마술이었어

 

피카소는 아프리카 예술에 대한 문화적, 정신적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그리고 존중 없이 자신의 예술에 차용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파리 트로카데로 박물관의 아프리카 마스크

 

작품의 의의

영국의 미술사학자이자 수집가이자 <큐비스트 시대>의 저자 더글러스 쿠퍼에 따르면,  <아비뇽의 처녀들>이 최초의 입체파 그림이 아니라는 의견을 다음과 같이 남겼습니다.

 

<아비뇽의 처녀들>은 일반적으로 최초의 입체파 그림이라고 불립니다. 입체파를 향한 중요한 첫걸음이긴 하지만 그때는 아직 그가 입체파의 특징(여러 시점에서 관찰한 모습, 파편화된 형태 등)을 보여주지 않았었기 때문에 이것은 과장된 표현입니다.

이 작품의 파격적이고 표현주의적인 요소는 냉정하게 현실에 입각해 세상을 바라보던 입체파의 정신과도 상반됩니다. 그렇지만 <아비뇽의 처녀들>은 새로운 회화적 관념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며, 피카소가 기존의 예술적 관습을 격렬하게 뒤집었고, 그 이후의 모든 것이 그것으로부터 발전했기 때문에 '입체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논리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비뇽의 처녀들>에는 입체파의 특징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여러시점에서 관찰한 모습, 이것으로 인해 파편화된 모습 등의 입체파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요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요소들이 가진 뾰족한 세부요소와 기하하적으로 단순화된 형상이 주는 모호한 느낌, 다시 말해 조형의 개념에서 벗어나 고의적인 왜곡을 사용함으로써 후대 평론가들에게 큐비즘의 시초로 평가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기점으로 그의 오랜 친구 조르주 블라크와 함께 입체주의(Cubism) 화풍을 더욱더 발전시켜 나갑니다.

 

50세에 벨라스케스처럼 그릴 수 있었지만 80세가 되어서야 아이처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매춘부라는 소재는 19세기 전반에 걸쳐서 미술과 문학에서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고 새로움을 쫓는(아방가르드) 작가들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비록 <아비뇽의 처녀들>에게서는 과격한 스타일로 표현되긴 하지만 이 작품 역시 당시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가 10대, 청소년 시절에 그린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피카소는 고전적인 화풍에도 능숙한 화가였고 기존 미술계에서 인정받을만한 작품을 그릴 수도 있었지만 자신만의 새로운 시도를 한 결과로 <아비뇽의 처녀들>이라는 명작을 남기게 됩니다.

 

일각에서는 <아비뇽의 처녀들>이 전위예술(아방가르드)의 시도인 동시에 피카소 자신이 이성(異性)에게 가졌던 혼란스러운 느낌을 표현한 것이라는 평가도 존재합니다. 당시의 연인관계였던 페르난드 올리비에와의 거친 사랑 이야기입니다. 피카소의 첫사랑은 이토록 어지럽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입체주의 (Cubism) 특징

입체주의 화풍은 입체적이지 않고 여러 시점에서 관찰한 평면의 이미지를 퍼즐처럼 섞어놓습니다. 입체주의라고 번역된 ' 큐비즘(Cubism)'은 입방체 혹은 정육면체를 뜻하는 'cubic'에서 나온 말인데 이것이 다른 언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입체주의라는 말 자체에 불편함을 느끼는 분들도 많습니다. 큐비즘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 대상을 기하학의 도형(네모, 세모 등)으로 단순화했다.
• 여러 시점에서 볼 수 있는 평면의 이미지를 퍼즐처럼 하나의 평면에 화가의 주관대로(자기 맘대로) 섞어놓았다.

피카소는 조르주 블라크와 함께 큐비즘을 창안한 화가지만 그의 일생일대의 걸작이라고 평가받는 '게르니카'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의 경력 후기 시절에는 전형적인 큐비즘이 아닌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발전시켜 나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피카소 <만돌린을 가진 소녀>과&nbsp; 조르쥬 블라크의 <바이올린과 촛대>

 

 

 

결론

파블로 피카소는 20세기 현대 미술의 아이콘으로, 세대를 관통하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생각들은 단순히 회화를 포함한 예술의 영역을 넘어서 현대의 사회 문화, 건축,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살아서 도자기, 스케치북, 판화 등 수만 점의 작품을 남겼고 두 번의 결혼과 세명의 여성 사이에서 네 명의 아이를 낳을 만큼 밤낮으로 쉬지 않는 예술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