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족제비를 안은 여인-레오나르도 다빈치

동물과 인간을 함께 담은 초상화가 많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 중에 특이하게도 담비 같은 족제비가 등장하는 작품이 있습니다. 폴란드의 국보이기도 한 이 그림은 다빈치가 1489년~1490년 즈음에 완성한 그림 중 하나로, 그림 속에 등장하는 족제비(담비)는 수많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품의 여러 요소를 살펴보게 되면 그가 왜 오늘날 까지도 각광받는 융합형 인재였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술 작품의 제목이 외국어에서 한국어로 번역이 될 때 많은 오류가 발생하는데 이 작품은 '흰 담비를 안은 여인'과 흰 족제비를 안은 여인' 두 가지로 나뉘어 불립니다. 그런데 담비와 족제비는 명백히 다른 동물이고 원제인 ' The Lady with the Ermine'으로 판단해 보면 족제비가 맞습니다. 

그런데 흰 담비라는 주장의 근거를 살펴보면 그리스어로 'galee(갈레)'는 흰 담비를 뜻하는데 이 그림의 주인공의 이름이 체칠리아 갈레라니인 것과 연관이 있다는 내용입니다.

근데 저는 단순히 당시는 현대의 생물학적 분류 기준과 달랐기 때문에 담비와 족제비가 동일한 종류로 여기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Lady with an Ermine (54cm*39cm) - Leonardo da Vinci

주인공을 찾다

처음에는 그림의 주인공의 정체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했지만 1900년 한통의 편지에서 주인공의 정체가 확실히 밝혀집니다.
 

'체칠리아 갈레라니, 오늘 우리는 지오반니 벨리니가 그린 훌륭한 초상화 작품들을 감상했어요. 그리고는 레오나르도의 작품들과 비교해보고 싶더군요. 혹시 레오나르도가 그린 당신의 초상화를 우리에게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이사벨라 데스테-

 
그녀는 당시 밀라노 공작이었던 루도비코 스포르차(최후의 만찬의 의뢰자)의 연인이자 불륜녀였습니다. 체칠리아 갈레라니는 밀라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유복하진 않으나 좋은 교육을 받고 자라 시와 연주에 능했고 그녀가 가진 외적인 아름다움과 지성미로 당시 많은 귀족들에게 인기를 얻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밀라노와 베네치아는 대치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밀라노의 공작 루도비코 스포르차는 베네치아 공국의 바로 옆에 위치한 페라라 공국 공작의 딸인 베아트리체와 결혼동맹을 맺는 방식으로 평화를 꾀하게 됩니다. 그런 까닭으로 루도비코는 체칠리아를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이 1491년 베아트리체와 사랑없이 결혼하게 됩니다. 그리고 요즘의 평일 저녁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요. 루도비코가 결혼한 그 해에 그림의 주인공 체칠리아 갈레라니는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아이를 낳습니다. 이후 나쁜남자 루도비코는 체칠리아가 다른 백작과 결혼하도록 중매를 섰고 다음 해인 1492년 박복한 체칠리아는 루도비코가 아닌 다른 남자와 사랑없이 결혼을 하게 됩니다.
 

담비가 가지는 상징성

첫 번째로, 담비는 귀족의 전유물로, 중요한 날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고급 의류 소재로 널리 사랑받았기 때문에 당시 매우 비싸게 거래되는 물품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담비가 그림 속 여인이 부와 권력의 가진 여성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레오나르도는 그의 메모에 '담비는 자기 몸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라고 기록을 하여 평소 담비에 대한 생각을 말해주는데요. 당시 유럽인들은 담비가 순수함을 의미하는 동물로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림 속 여인과 남자의 순수한 사랑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세 번째로, 당시 흰 담비는 불명예스러운 일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동물이었습니다. 이런 담비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조직된 '흰 담비 기사단'이라고 불리우는 집단이 있었는데 나쁜 남자 '루도비코 스포르차'가 이 기사단의 멤버였습니다. 이제 다시 그림을 살펴보면 흰 담비가 루도비코로 보이기 시작하고 여인과 담비는 한 방향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루도비코는 상당한 덩치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는데 체칠리아 품에 안겨있는 담비 또한 상당히 근육질입니다. 
 
네 번째로, 레오나르도는 평소 말장난을 즐겨하며 그림에도 그것을 녹여내는데요. 그리스어로 담비를 뜻하는 'galee(갈레)' 그리고 그림의 주인공 이름이 체칠라니 갈레라니 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섯번째로, 2014년에 프랑스의 한 엔지니어가 '층간증폭법' 기법을 사용해 그림을 스캔해본 결과, 그림에 처음부터 족제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이를 통해 미술사학자들은 유난히 크게 그려진 체칠리아의 손과 족제비가 여인의 임신 상태를 의미한다는 추측을 하게 됩니다.
 

최초의 근대 초상화

이 작품은 최초의 근대 초상화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당시 이전의 초상화들은 인물들을 무표정하고 담백하게 그려내던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다빈치는 스푸마토 기법을 활용하여 인물의 표정에 생동감을 불어넣었으며 콘스라포스토로 설명되는 인물의 자세는 그림의 생명력을 불어넣어 보다 몰임감 있게 만들어줍니다.
 

스푸마토 기법(대기원근법)은 이탈리아어로 '연기' 또는 '스모그'를 의미하는 'Sfumato'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기법은 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들이 사용했습니다. 이 기법은  여러번 덧칠하는 방식으로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레오나르도는 당시의 선 원근법을 이용하여 단순히 3차원의 장면을 2차원의 캔버스에 옮기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대기 중의 먼지나 수증기로 인해 빛이 산란하는 것을 관찰하고 그것을 자신의 그림에 반영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그림에 입체감을 주며 인물의 피부나 옷의 질감을 더욱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스푸마토 기법은 다 빈치의 '모나리자'에서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 기법을 통해 모나리자의 미소와 배경을 조화롭게 묘사하였습니다. 

콘트라포스토는 미술에서 인체의 자세를 묘사할 때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이탈리아어로 '반대'라는 의미를 지니는데 이 그림에서는 체칠리아 몸의 방향과 얼굴의 방향이 다르게 표현하여 보다 동적인 느낌을 주고 자연스러움을 느끼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