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풍경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산책용 지팡이와 스케치 도구를 들고 떠난 북쪽 발트해를 여행하던 중에 드레스텐의 남동쪽에 위치한 엘베 샌드스톤 산에서 그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담게 됩니다. 파도가 휘 몰아치는 듯한 안개 자욱한 산 절벽 끝에 한 남자의 뒷모습이 왠지 모르게 고독하고 애처로워 보이는 이 작품은 나치의 당수 히틀러가 사랑했던 그림으로도 유명합니다.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94.8 cmX74.8 cm by Caspar David Friedrich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카스파드 다비드 프리드리히 1774-1840

 
프리드리히의 작품들은 대개 광활한 자연 속에 유난히 인간의 뒷모습이 고독하고 쓸쓸한 느낌으로 묘사된 작품들이 많습니다. 이는 그의 인생사를 알고 나면 작품과 작가의 마음에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그는 7살이라는 너무도 이른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13살 때는 형과 빙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다가 빙판이 깨지면서 물에 빠진 자신을 구하려던 형이 되려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17살 때는 그의 누나 엘리자베스와 3년 후에는 또 다른 누나 마리아와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5년 후 그의 마지막 가족인 아버지도 세상을 뜨게 됩니다. 이렇게 가족의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점철된 그의 초년의 기록은 그를 평생 우울증에 시달리게 만들게 됩니다.
 

비극적인 상황이 이어지자 프리드리히는 자살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이를 가리기 위해서 수염을 기르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작품들은 아래 '바다의 수도승'에서와 같이 광활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로 묘사됩니다. 그에게 자연은 신성한 존재이며 그것을 그리는 자신은 신과 교감하는 것이고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영적인 체험 과정이었습니다.
 

바다의 수도승 110X171,5cm by Caspar David Friedrich

 

성장기 프리드리히는 신실한 루터파 교인이었던 아버지의 엄격한 가정교육 때문에 거의 수도원의 수도승처럼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남자의 뒷모습(Rückenfigur)

 

작품의 조형적 요소

 
 
프리드리히는 전체를 3 분할하여 상단은 하늘을 중앙은 안개가 휘몰아치는 산맥을 역동적으로 묘사하였고 바위 절벽 위에 남자가 서 있는 전경은 마치 파도를 뚫고 앞으로 나아가는 뱃머리를 연상케 하는 삼각형의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는 대기원근법을 사용하여 주인공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아득하게 표현하여 광활한 자연을 더욱더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점은 관람객으로부터 배경을 가린 채 화면 가운데 우뚝 서 있는 남자의 뒷모습입니다. 프리드리히가 즐겨 사용했던 뤼켄피규어 (Rückenfigur)라고 불리는 이 기법은 '뒷모습'이라는 독일어 단어입니다. 이는 사람을 뒷모습으로 묘사하여 관람객에게 그림에 몰입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피사체를 관찰하는 우리가 나는 네가 되고 너도 내가 될 수 있게 만들어줌으로써 그림의 풍경을 함께 바라보게 만듭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자신보다 20살 이상 어린 카롤리네 봄머라는 25세의 여인과 결혼하던 해에 그려진 작품입니다. 오랜 독신 생활을 청산하고 이제 신혼생활이라는 행복하고 달콤한 시간을 보내야 할 이때에 이 남자는 왜 혼자 산에 올랐을까? 그의 헝클어진 뒷머리와 쓸쓸한 뒷모습에서 우리는 많은 생각이 오고 갑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도 뒷모습으로 그립니다.

 

화가는 자기 앞에 있는 것뿐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본 것도 그려야 한다. 
내면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다면 앞에 있는 것도 그리지 말아야 한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숭고함(Sublime)

숭고함이란 인간의 이성으로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이나 이해를 초월하여 경외감을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프리드리히가 자신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다루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에게 자연은 신성한 것이었습니다. 자연을 마주하고 이것을 그림으로 남기는 것은 신이 빚어낸 생명들과 교감하고 동시에 자신의 내면과 감응하는 행동입니다. 자연을 바라본다는 것은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이 됩니다. 당시 수많은 낭만주의 사조 예술가들이 그러했듯이 그는 예술이라는 것은 실물 그대로가 아닌 결국 내면이 반영돼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우리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험준한 산을 올라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이야~, 어머~~' 하며 휴대폰을 꺼내여 풍경을 담는 행위도 이와 맞닿아있겠지요

 

인간의 절대적 목표는 사람이 아닌 무한한 신이다 
지향점은 예술 그 자체이지 예술가 일수 없다
예술가의 지식과 능력은 한계가 있지만 예술은 무한하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떡갈나무 숲의 대 수도원 묘지, The Abbey in the Oakwood (1808-1810)110.4 x171 cm by Caspar David Friedrich

 

마치며

'안개 바다 위에 방랑자'는 한 때 독일 나치의 선전도구로 이용된 이력이 있습니다. 조국의 영토 확장을 꿈꾸는 정복자의 시선이 투영된 것입니다. 한때 이런 전력으로 역사의 뒤 안길로 영원히 사라질 뻔하였지만 그림이 완성된 지 200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영화포스터, 책표지, 티셔츠 같은 대중문화에 널리 인용되고 있고 "'풍경의 비극'을 발견한 작가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빙해, The Sea of Ice 96.7 cmX126.9 cm by Caspar David Friedri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