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노포가 많은 이유

일본은 전통적으로 '노포', 즉 오랜 기간을 영업해 온 가게나 기업이 많은 나라입니다. '곤고구미'라는 일본의 건축 기업은 6세기인 577년에 설립되어 2006년 파산하기까지 무려 1400년이 넘게 일본 각지의 유명한 목조 건축물을 건설하고 유지보수 해왔습니다. 한때는 '곤고구미가 흔들리면 일본이 흔들린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건실한 기업이었지만 80년대 일본 경제의 버블시대에 부동산 투자를 잘못하면서 결국 문을 닫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노포'라는 단어는 일본의 시니세(노포, 老鋪)의 한자 표기음을 가져온 것입니다. 일본의 시니세들을 어떻게 수세기에 걸쳐 존속할 수 있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 합니다.
 

 

일본의 '와(和)' 사상

일본 기업이 오랫동안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그들이 1400년 넘도록 지속되어 오던 "와(和)"라는 문화를 이해해야 합니다.우리가 화목하다 할 때 사용하는 그 '화(和)'입니다. "와"는 사회적인 균형과 조화를 의미하며, 개인의 사회적 역할을 중요시하는 것을 뜻합니다. 달리 말하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 맡은 일을 하며 농사꾼은 농사를 상인은 장사를 사무라이는 사무라이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본 사회에서 개인이  집단내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집단의 성공을 위해 헌신을 강제하는 문화적 성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개인의 욕구나 개성은 철저하게 무시받게 됩니다. 
 
우리가 한국음식을 '한식'이라 하듯이 일본은 본인들의 음식을 '화식'이라 부를 만큼 화(和)는 일본 그 자체를 말하는 단어입니다. 집단의 '조화'를 위해서 철저하게 집단의 구성원으로 행동하는 것이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당연하다는 사상은 일본인들의 머릿속 깊이 뿌리박고 있습니다.
 
예전에 일본에서 쓰나미로 인한 재난 상황이 TV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있을 때, 한 나이 지긋한 여성이 구조를 기다리는 장면이 포착되었습니다. 구조요원들이 신속하게 대응하여 다행히도 그녀는 안전하게 구조되었습니다. 그 후 기자들이 그 여성에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그녀의 첫 답변은 "민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였습니다. 재난 피해자도 집단에 부담을 주는 것을 꺼려하는 일본의 사회적 특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여성의 모습을 지켜보는 다른 일본인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집니다. 일본 국토교통성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교통 상황이 혼잡할 때 유모차를 가지고 타는 승객이 불쾌한가'라는 문항에 절반 가까이가 '그렇다'라고 응답한 결과를 통해 일본 사회의 이러한 태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전통적인 계급사회

6세기말 쇼토쿠 태자가 주창한 '와(和)' 사상은 일본의 계급 사회를 더욱더 굳건히 지키는 정치적 시스템 이었고 이는 오늘날 노포의 존속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오랜 기간 일본인들의 '이주의 자유'를 막았고 일반 백성들은 다이묘가 지배하는 계급사회를 지탱하는 바탕이 되어야 했습니다. 계급사회를 이루는 집단의 힘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며 사회의 안정을 이루는 동시에 권력자는 그 자리를 영원히 유지하게 됩니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곳에서 정해진 일을 하면서 서로의 영역에 대해서 절대 침범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만약 라멘집을 하는 집에서 태어났는데 옆 마을에서 떡볶이 장사가 하고 싶어서 '창업'을 하게 되면 '집단 따돌림' 혹은 무라하치부'라는 문화가 그의 가족 전체를 투명인간 취급을 하게 됩니다. 운이 나쁘면 사무라이가 나타나 목숨을 잃게 됩니다. 집단의 질서를 위협하는 '개인'이 없어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계급사회가 현재도 진행중이다 라는 것은 일본의 정치문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현재도 일본 정치인들은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자식에게 세습하지만 일본 국민들은 크게 반발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태도의 배경에는 국민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는 본인들이 속한 계급과 가문에 대한 인식으로, 정치인들이 권력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며, 개인들은 각자의 일에 집중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성공하더라도, 고향의 가락국수집이나 초밥집을 이어받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는 사례가 많습니다. 이는 일본 사회의 특유한 풍토를 반영하는 사례입니다. 일본인들은 권력 세습으로 인한 공정성의 훼손보다, 기존 관행과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로 일본 국민들을 대상으로 '세습 정치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 대부분의 답변은 '아버지가 했으니 아들이 계속하는 것은 당연하다'였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일부에서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부추기고 투표율을 낮추는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합니다.
 
 

마치며

도쿄대학의 어느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일본인들은 오랫동안 세습을 받아들여왔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과거제 같은 제도가 없었고, 섬나라 특성상 도망갈 곳이 없어, 치열한 경쟁보다는 출생에 의해 결정되는 세습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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