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베르제르의 술집-에두아르 마네(인상파들의 왕)

인상주의의 아버지,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A Bar at the Folies-Bergère >은 거울에 비친 화려한 파리의 밤 풍경과 그와 대비되는 바텐더의 무심한 듯 초점 없는 눈빛이 특징으로 마네가 남긴 최후의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에두아르 마네,96cmX130cm,캔버스에 유채,1882,런던 코톨드 미술관

 

 

작품의 역사적 맥락

19세기 후반, 나폴레옹 3세 치하에서 파리는 대대적인 도시화 과정을 거쳤고, 오스만 남작의 개조 공사로 하루종일 어둡고 습하던 파리의 좁은 도로들은 재정비를 거쳐서 확장되고 도시 곳곳에 크고 작은 공원이 조성되었으며, 폴리베르제르(The Polies Bergère)와 같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장소가 생겨나게 되었고, 파리는 곧 사교 활동의 중심지로 급부상했습니다. 

 

파리의 밤도 함께 변해갔습니다. 가스 조명이 거리를 밝히면서 사람들은 밤에도 집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갔고 유흥을 즐기기 위한 대중을 상대로 한 카페, 극장, 카바레가 곳곳에 생겨나기 시작했고 또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기 시작하면서 파리의 밤 풍경은 화려해져만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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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폴리베르제르

1869년, 파리 9구에 문을 연 폴리베르제르는 19세기 파리에서 꽃 피웠던 엔터테인먼트 문화의 상징이자 변화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음악, 무용, 기타 공연이 어우러져 파리 시민과 방문객 모두에게 인기 있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고 먹고 마시고 즐기며 벨 에포크(Belle Époque, 1차 세계대전 이전의 평화로운 시절)의 즐거움을 만끽합니다.

 

 

2013년 리모델링을 마친 폴리베르제르

 

폴리베르제르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것은 단순히 공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 경험을 공유하는 특별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공연장은 아방가르드와 전통이 조화를 이루며 파리의 문화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오페레타부터 발레, 그리고 이국적인 광경을 연출하는 다양한 공연까지, 세계 각국의 예술들이 이곳의 무대를 장식했습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이전에는 주로 전통적인 역할에 국한되었던 여성들이 폴리베르제르의 바텐더, 댄서, 연기자와 같은 새로운 직업을 가지게 되면서 전에 없던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갑니다. 이는 당시 사회적 규범과 도덕성에 대한 도전이었고, 이러한 변화는 당시 각종 논쟁과 비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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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바텐더

이 그림의 중심에는 도시 생활의 활기찬 모습과 대비된 고립된 모습을 모두 담고 있는 바텐더가 서 있습니다. 넋 나간 듯 보이는 표정은 싫증이 난 건지, 생각에 잠겨 우울한 것인지, 아니면 손님들이 몰려와 정신없이 일을 한 탓에 피곤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화려한 밤 풍경과 대조적인 느낌을 줍니다. 

 

이 여인의 모델은 '수잔 발라동' 혹은 쉬종(Suzin)이라는 이름의 바텐더였습니다. 그녀는 사생아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서커스단에 들어가 곡예사로 활동하였는데 15세에 그만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겪으면서 서커스단을 그만두고 거리로 나와 돈이 되는 것은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닥치는 대로 해야 했던 인생이었습니다. 아마도 지금 그녀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서커스는 하루하루가 고통인 그녀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나 봅니다.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습작-에두아르 마네,1881

 

 

바텐더의 시선은 프레임 밖의 관람자를 그림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미묘한 거리감이 느껴지기 때문에 관람자는 다소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녀가 서 있는 위치는 그림의 중앙이지만, 약간의 균형을 잃은듯한 자세를 보여주며, 그녀의 불안정한 생활과 그에 따른 불안감을 말해줍니다. 또한 차분한 그녀의 모습과 역동적인 배경의 대비는 긴장감 갖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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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장갑의 여인

온통 검은 옷 일색인 손님들 가운데 그림 왼쪽 상단, 첫 번째 줄에 앉은 흰색 드레스오 노란 장갑을 착용한 여자는 한눈에 띄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 여자는 메리 로랑(1849~1900)이라는 예명으로 잘 알려진 여배우 안로즈 루비오로 추정되는 인물입니다.

 

안로즈 루비오는 수많은 염문설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렸고,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등장인물, 오데트 스완이라는 캐릭터를 창조하는 데 큰 영감을 주었다고 전해집니다.

 

메리 로랑은 프랑스 제2제국 시기의 원수, 캉로베르 사령관과 결별한 후,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의 연인이 되었습니다. 메리 로랑과 말라르메가 살던 집은 마네의 작업실 근처였습니다.

 

 

마네는 살롱전 낙선작 두 점을 선보인 1876년 전시회에서 그녀를 처음 보게 되는데 이후 친구로 가깝게 지내며 마네의 그림의 모델이 되기도 합니다. 마네는 그녀에게 그 유명한 자신의 작품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의 여러 버전 중 하나를 선물하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훗날 작가 조지무어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을 어려 번 목격했다고 말하는데 메리 로랑은 마네가 죽은 후에도 그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고 증언하면서, 두 사람이 단순한 친구라기보다 훨씬 깊고 내밀한 사이였음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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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의 반영: 현실과 환상사이

 

이 그림은 수평적인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전경에는 달고 과일 향이 나는 독한 술 리큐어를 비롯하여 다양한 술병과, 파리 사람들의 화려한 삶을 상징하는 샴페인 병이 늘어선 바가 있고 그리함 하단 중앙의 오렌지가 담긴 유리그릇과 꽃이 담긴 유리컵은 이 무렵 마네가 그린 가장 아름다운 정물화 중 하나입니다. 

 

전통적인 서양화에서는 원근법을 중요하게 여기며, 이를 통해 그림의 깊이감과 입체감을 강조하였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입체감과 공간감에 표현이 약한 까닭에 당시 비평가들을 비롯해 일부 관람객들은 마네의 기술이 부족하다며 ' 원근법도 모르는 화가'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 그림에서 가장 주목받는 부분은 다름 아닌 바텐더 뒤에 있는 거울입니다. 이 그림에서 우리에게 던져주는 수수께끼는 관객의 예상 위치와 비교하여 거울이 실내의 광경을 비추는 각도가 의문스럽고, 화면 맨 오른쪽에 거울에 비치는 남자, 즉 바텐터 앞에 서 있는 남자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마네는 이 한 작품 안에서 쾌락을 추구하는 부르주아 세계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면서 그림, 바텐더, 화가 그리고 관객의 다양한 역할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화면의 중심을 잡고 있는 바텐더는 바에 양손을 짚고 있으므로 바에 놓인 물건들을 둘러싸는 삼각형 구도를 만들고 있습니다. 바에 놓인 병과 오렌지 그리고 장미를 묘사한 색채는 여인의 드레스, 얼굴, 머리카락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바텐더 뒤로 보이는 거울은 어지러운 실내를 비추고 있고 수평으로 길게 늘어진 바는 중경에 보이는 발코니와 수평을 이루고 있습니다. 

 

거울에서 흐릿한 부분은 실제와 거울에 비친 이미지가 다르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결국 화면 맨 위 오른쪽에 비친 남자는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이 부분에서 마네 자신이라는 해석도 존재합니다). 그 남자와 바텐더 뒤쪽에 펼쳐진 광경도 실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나는 남이 보기에 좋아하는 것이 아닌, 내가 보는 것을 그린다.
-에두아르 마네-

 

이런 요소들을 보며 시선의 주인은 이 장면을 이해하려 애쓰게 됩니다. 시선의 주인은 남자 고객일까? 또는 두 사람의 관계를 지켜보는 화면 밖 제3인가? 아니면 그림을 보는 관람자인가? 마네는 바텐더와 고객, 그림, 화가, 관객 사이에 암시된 상호작용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관객을 어려움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다음은 그 밖에 세부사항입니다.

그림의 상단, 바텐더의 등 뒤에 있는 거울에 비친 손님들의 모습은 한눈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마네는 인물들을 자세하고 꼼꼼하게 묘사한 것이 아니라, 주로 신사들이 쓴 실크해트와 얼굴을 간략하게 보여주는 어두운 붓터치를 이용해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림 왼쪽 상단에 위치한 인물들은 유난히 눈에 드러 집니다. 그림의 왼쪽 상단에 있는 여자는 발만 보이는 그네 위의 곡예사의 동작을 더 잘 보기 위해 쌍안경을 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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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빛, 구도의 사용

 

마네는 뚜렷한 명암 대비에 평소 관심이 많았고 색조의 변화가 거의 없는 색채를 이용하며 평평한 형태와 화면을 만드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도 마네의 색상 팔레트는 풍부한 색채와 차분한 색채가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강렬한 흑백 대비를 사용하면서도 세부에 시선이 끌리도록 밝은 색조를 이용했습니다.

 

짙은 붉은색과 금색은 화려한 느낌을 주는 반면, 바텐더의 창백한 피부와 소박한 옷차림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그녀의 고립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녹색, 빨간색, 주황색으로 유리 접시에 담긴 오렌지를 강조하여 묘사했고 바텐더 가슴에 있는 장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꽃병에 꽂힌 꽃의 옅은 분홍색과 크림색은 바텐더의 피부색에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마네는 색을 섞지 않고 물감을 짠 그대로 펴 바르는 일이 많았습니다. 대신 다양한 색조와 입체감이 필요할 때 색을 겹쳐 칠하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빠른 붓터치 한 번으로 꽃잎을 생동감 있게 보이도록 그렸고 마른 흰색이나 크림색은 밝은 세부영역을 강조하며 더 묽은 흰색으로 덧칠하여 부피와 음영의 대비를 나타냅니다. 마지막으로는 크기가 작고 밝은 점을 더해 세부사항을 완성했습니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사물은 정밀하게 그려지기보다 은근히 드러나는 느낌입니다. 밝은 색으로 묘사된 세부사항과 강렬한 명암 대비는 생동감 넘치는 폴리베르제르의 분위기를 더하고 있습니다.

 

마네는 분홍색의 꽃을 여려 번 겹쳐 칠했는데 옅은 분홍, 모브, 흰색 붓질이 꽃잎의 유려한 곡선을 만들어내고 있고, 꽃 안쪽 부분에는 밝고 작은 빨간색 줄을 섬세하게 두어 번 그어 꽃을 완성했습니다. 오렌지를 담고 있는 유리는 주황색 위에 투박하게 채색된 흰색과 모브색 붓터치로 살려냈습니다.

 

바텐더의 팔은 옅은 분홍빛 살색을 평평하게 칠해 드레스의 커프스 부분과 유리 접시 아래에만 음영이 드리우도록 묘사했습니다. 

 

조명은 이 작품에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바텐더를 은은하게 비추는 조명은 그녀가 이 작품의 주인공임을 확인시켜주고 있고, 배경의 확산된 조명은 장면에 깊이와 움직임을 더합니다.

 

마네는 구도적으로 병과 바 같은 세로 구도와 바 자체와 머리 위 발코니 같은 가로 구도를 균형 있게 사용했습니다. 술병 배열로 둘러싸인 바텐더의 중앙 배치는 그녀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