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가 드가-압생트(L'Absinthe)

세상 모든 고민 짊어진 듯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는 여성과 세상 무심한 듯 파이프를 입에 물고 프레임 밖을 응시하는 남자를 담은 이 작품은 에드가 드가의 '카페에서' 또는 '압생트(L'Absinthe)'입니다. 초기에는 제목이 '프랑스 카페의 스케치(A sketch of a French Café)' 또는 '카페의 인물(Figures at Café)'이었지만 현재는 압생트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에드가 드가-압생트 캔버스에 유채 1875~1876년 (92X68cm) 오르세 미술관

작품 해석

드가는 17~18세기 플랑드르 회화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었던 전통적인 주제였던 '주점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자신만의 해석을 담아 이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 작품은 축제의 즐거운 분위기가 아닌 도시 생활의 고독과 타락이란 주제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왼쪽 하단에 성냥과 드가의 서명이 새겨진 신문지가 놓여 있습니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 인물의 배치를 오른쪽 상단으로 몰아두었습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여성 앞에는 알코올의 효과에 환각 증상을 동반하여 '녹색요정'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독한 술인 <압생트>가 담긴 유리잔이 놓여 있고, 이미 한잔하고 취기가 오른듯한 여성의 표정은 우울하고 시선의 초점마저도 흐리멍덩합니다.

 

쉽게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이 작품에는 '옥에 티'가 있는데요. 드가는 테이블의 다리를 그리는 것을 잊어버렸고 테이블은 공중부양을 하고 있습니다. 

 

남성은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무심한 듯 프레임 밖 오른쪽 방향을 바라보고 있고 그의 앞에는 당시 숙취 해소제였던 '마자그랑(유리컵에 담긴 차가운 커피)'가 있습니다. 갈색, 회색, 검은색등으로 구성된 이 작품의 색상 팔레트는 장면에 우울한 느낌을 한층 더 배가 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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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적 특징

사선 구도와 시선의 이동

 

 

'압생트'는 회화에서 구도를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예시 작품입니다. 특이하게도 남성의 손과 파이프는 잘려나가 있고, 왼쪽 전경에 놓인 테이블과 신문도 대각선 방향으로 잘려나갔습니다. 또한 사선 구도로 오른쪽 상단 구석에 인물을 배치한 고립감을 강조하는 비대칭 구도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작품에서 느껴지는 불안감과 우울함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그림만큼이나 사진 촬영을 즐겨했던 드가의 이런 독특한 프레임 구성 방식은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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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요정 압생트

압생트, '녹색 요정'이라고 불리는 이 음료는 당시 파리에서 높은 인기와 함께 논란이 많았던 술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도 즐겨마셨다던 '압생트'는 아니스와 민트의 혼합물에 압생트(아르테미시아 압신티움:향쑥)의 꽃과 꽃잎에서 추출한 진액을 넣어 만든 술입니다. 압생트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19세기말 압생트는 당시 파리의 가난한 노동자 계층에 인기가 높았는데 '녹색요정'이라는 별칭답게 옅은 초록색을 띠면서 아니스 술과 맛이 비슷하지만 뒤끝은 좀 더 시고 쓰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인기가 많았던 만큼 제조방식도 다양해서 화양풍, 히솝풀, 멜리사, 아르테미시아 폰티카, 안젤리카 뿌리, 창포, 박하, 고수와 같은 여러 종류의 허브를 섞여 제조하기도 했습니다. 이 술의 알코올 도수는 45~90 º로 아주 높았습니다.

 

이 당시 가장 유명했던 압생트는 '페르노피스'였는데, 이 술은 지금의 테킬라가 라임과 소금을 함께 마시는 것처럼 조금 독특한 절차를 거쳐야 했습니다. 홈이 파인 압생트 전용 숟가락에 각설탕을 올려놓고, 이것을 컵에 넣고 술을 부어서, 설탕이 완전히 녹으면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알코올의 효과를 더하기 위해 소량의 아편을 곁들였다고도 전해집니다.

 

이 음료는 당시 프랑스에서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가는 보헤미안들의 자유와 타락의 상징하는 술이었고 특히 예술가와 작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리고 1915년이 되어서야 많은 나라에서 이 술의 제조와 판매가 금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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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벨 아텐 카페에서의 장면

드가의 압생트는 몽마르트르의 피갈 광장에서 지금까지도 영업 중인 누벨 아텐 카페(La Nouvelle Athènes)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카페는 드가를 포함한 쿠르베, 감베타, 마네 등 인상파 화가들의 모임 장소로 유명했습니다. 

 

왼쪽: 마네가 그린 데부탱의 초상화 오른쪽: 마네가 압생트와 동일 모델로 담은 작품 <Chez le Père Lathuille>

 

그림에 등장하는 남자 모델은 당시 유명화가이자 판화가인 질베르 데 부탱이며 마네가 그린 그의 초상화에서도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옆에 있는 여성 모델은 마네와 르누아르 등의 모델이자 유명배우로 알려진 엘렌 안드레입니다. 그녀는 1879년대에 연기를 시작하고 폴리발렌트의 바에서 인기를 끌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두 모델은 마네가 담은 작품 <라투유 식당에서(Chez le Père Lathuille)>에서는 압생트의 비루한 분위기와는 달리 상당히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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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과 비판

1876년, 제2회 인상파 전시회에서 최초 공개된 이 작품은 당시 비평가들에게 알코올 중독자들을 묘사한 주제가 지나치게 저속하고 추잡하다는 이유로 격한 비판을 받게 됩니다. 심지어 그림의 모델조차도 이 그림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자신들의 모습이 마치 도시의 부랑자처럼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그 후, 이 작품은 영국과 프랑스의 여러 소유주를 거치면서, 1893년 런던 그래프톤 갤러리(Grafton Gallery)에 '압생트'라는 제목으로 다시 전시되어 또 한 번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예술로 부터 교훈을 얻고자 했던 당시 엄숙주의가 지배하던 유럽의 분위기는 이 작품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티브이에 나오는 연기자들이 극 중 배역의 이미지가 실제처럼 덧씌워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압생트>에서 알코올 중독자로 묘사되었던 두 모델, 데 부탱과 엘렌 안드레는 이 작품으로 인해 세간의 평판이 나빠지게 됩니다. 때문에 에드가 드가는 그들이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라고 공개적으로 밝혀야 하는 수고를 치러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