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파의 색채분할

대상의 고유한 색채, 예를 들면 사과는 빨갛다. 바나나는 노랗다. 그것을 그대로 표현하기보다는 자신의 눈에 비치는 대로 자연을 담으려 했던 인상파 화가들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 냅니다. 잎사귀의 뒷면이나 옷의 주름마다 비쳐드는 미묘한 태양 빛을 그대로 장면에 담으려 했고, 거기에 더해 미묘한 빛의 색뿐만 아니라 밝은 광채까지 표현하려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이뤄내는 기법이었습니다. 

 

클로드 모네-양산을 든 여인,캔버스에 유채,100cmX81cm(39inX32in),National Gallery of Art ,  Washington, DC

 

 

물감을 섞으면 밝기를 잃는다

 

태양의 반짝임을 그대로 화면에 담으려면 태양 빛의 색을 그대로 옮겨야 합니다. 우리의 눈에 그저 백색광으로 보이는 태양 빛이 뉴턴의 스펙트럼 실험 이래로 무지개가 7가지 색(뉴턴이 종교적인 이유로 남색에 보라색을 더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7은 서양에서 신성한 숫자였습니다.)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하지만 당시 광학 이론의 발달이 이 현상을 보다 더 이론적으로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따라서 인상파 화가들은 먼저 무지개의 일곱 색 사용을 원칙으로 하는데 그것은 빨강, 파랑, 노랑의 삼원색 그리고 그 삼원색의 조합으로 생겨나는 주황, 보라, 초록의 제1차 혼합색을 팔레트의 중심에 두고 어두운 색채를 배제하는 것이 주요 목표였습니다.

 

그 결과 인상파의 작품들은 이전의 그림들에 비해 아주 밝게 빛나게 됩니다. 실제로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방문하게 된다면 그 느낌을 확실히 받으실 수 있을겁니다. 19세기 바르비종파나, 쿠르베, 마네의 작품이 전시된 전시실을 빠져나와 인상파 전시실로 들어서면 갑자기 어두운 동굴을 빠져나온 듯 환한 느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상파의 첫 번째 원칙은 원색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색을 조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회화 기법에서는 중간색을 만들어내기 위해 여러 종류의 물감을 섞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연의 세계는 물감의 색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실제와 같은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고민했던 인상파들은 물감을 섞게 되면 물감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밝은 빛을 가진 무지개의 일곱 가지 물감을 하나하나 섞다 보면 결국에는 검은색이 되는 것이지요. 

 

물감을 섞으면 감산혼합, 빛을 혼합하면 가산혼합

 

그러나 무지개의 일곱 색깔을 빛으로 섞으면 점점 밝아져서 끝에는 백색광이 됩니다. 원래 무지개의 일곱 색이라는 것은 태양 빛을 분해하여 나온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물감을 섞는 것은 밝게 빛나는 자연과는 완전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작가들은 가능한 한 물감을 순수하게 두고 원색을 지키려 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 였습니다. 

 

---

마치 LED TV 모니터 처럼 물감을 섞지 않고 나란히 두었다

 

그렇다면 중간색을 표현하고 싶을 때에는 어찌합니까? 어떻게 할까요? 모네는 이에 대하여, 섞어야 할 색을 따로따로 하나하나 조밀한 터치로 화면에 병렬, 즉 나란히 두는 방법을 택합니다. 그렇게 하면, 작은 터치이기 때문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면 개개의 터치는 보이지 않고 전체가 하나로 섞여 보입니다. 그리고 물감이 개별로 놓여있기 때문에 그 밝기를 잃지 않고 환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물감을 섞지 않고 각각의 물감에서 나오는 광채는 우리 눈 속에서 섞이게 됩니다. 이를 '시각 혼합' 혹은 '망막상의 혼합'이라고 부릅니다. 이 시각 혼합을 가져오는 묘사 기법이 바로 제목에서 말씀드렸던 '색채 분할'입니다.

 

모네의 <양산을 든 여인>에서도 화면 하단 부분에 배치한 풀밭의 묘사가 색채 분할의 좋은 예시가 됩니다. 여러 가지 색의 터치가 그대로 화면에 병렬되어 그림자 부분에는 녹색 그리고 빨강의 터치가 아주 자유분방하게 놓여있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여름의 풀밭, 그 더위가 느껴질 정도로 다채로운 빛을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 또한 이 색채 분할 기법의 효과 때문입니다. 

 

화면에 흩뿌려진듯한 오밀조밀한 붓터치는 모네가 말한"내 작품은 자연을 향해 열린 창"이라는 말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자연을 몽롱한 느낌으로 표현하였지 자연 그 자체를 그대로 옮겨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모네 자신만의 해석이 투영된 허구적 자연일 뿐입니다. 그리고 모네는 1886 인상파 전시회에 열렸던 '양산을 든 여인'을 그렸던 무렵부터 이렇게 세밀한 터치로 작품에 빛을 불어넣는 기법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그리고 피사체의 정확한 묘사는 모네의 작품에서 사라집니다.